알파 41기 첫4랑조 임현오 집사입니다.

 

제목 내 교회 나의 목사님

 

나에게 있어 인천이란 곳은 대학교때 부산에서 올라온 가난한 대학생이 계산구 작은아버지 집에서 숙식하며

서울 사당동으로 등교 하여 수업듣고 저녁 아르바이트,방학 아르바이트등 힘들고 어려운 곳이라고는 기억이 남는곳입니다.

학교 휴학후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지 않고 부산에서 다시 학교와 직장 생활을 했을정도로 너무 힘든 생활을 했던 곳이

인천이라고만 저에게는 마음 깊은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12년동안 안정적인 대기업의 생활을 뒤로 하고 개인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여러 여건이 되어 기존 사업을

일부 정리 하여 인쇄 공장을 인수하고 초심으로 돌아가 사업을 하던중 오래전부터 제가 도아주던 피자 프렌차이즈

브랜드 대표님의 권유와 설득으로 광교신도시로 3년전에 경기지사장업무를 위해 올라 오게 되었습니다.

나의 교회가 해운대에 가족과 함께 있기에 매주 내려가서 주일예배와 교회 직분을 담당하던중

차량 사고로 인하여 자주 부산에 내려 오지 않고 광교신도시에서 숙식하여 지내게 되었습니다.

26년간 교회 직분을 담당하여 왔던 나로서는 휴가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하지만 점점 주일예배를 지켜나가는게

게을러 지며 주일 새벽예배로 대체하여 주일에 운동 하러 가는 날이 많아 졌습니다.

그렇게 2년이 흘러가고 나의 교회가 해운대에 있다라는 마음으로 광교신도시 부근 교회에 등록 하지 않고 매주 교회를 옮겨가며

예배만 드리는중 아내관련하여 일산에 있는 계열 대학병원 발령이 공고나는 기간이 지났음에도 아무 소식도 없고 21년차와 직책이

있다라는 이유로 위쪽 병원이 거부할 경우가 많다는 간호과 관리자의 말을 들으며 기약없이

가족 모두 떨어져 지내던중 우연찮게 인천 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에서 아내와 입사관련 미팅이 진행 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일주일간의 휴가때 인천으로 올라와 면접,합격,신체 검진까지 일사천리로 합격하여 다음달부터 인천으로 출근하게 되는

상상도 할수 없는 결과를 맞이 하게 되었습니다.부산집은 세입자를 구하지도 못하고 큰 짐은 다 버리고 간단한 짐만 가지고 인천이란

곳으로 이사오게 되는 믿기지 않는 결과를 맞이 하게 되었습니다.

부목사님이 추천하는 마전감리교회와 검단중앙교회,선교중앙교회등 여러 교회에서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드리며

나의 교회를 위해 기도 하였습니다.하지만 마음으로 정하기 보다는 아이들이 학교와 교회를 가기 편한곳으로 퍼즐

맞추기 하듯 검단중앙교회를 선택하여 교회를 등록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는 부산 온누리 교회가 아직 마음을 떠나지 않고 있는 가운데 1달의 시간이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아주대학병원으로 옮겨서 광교신도시로 이사가기를 바라며 서로 의견 충돌을 하게 되고 또 1달이

지나갔습니다. 매일 광교 신도시를 츨퇴근 하다보니 교통비와 기름값으로 백만원 후반의 돈이 소요되니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던중 교회에서 새신자와 알파라는 교육에 참여 하라는 교구장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참여

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마음 한곳에는 26년간 받은 교육들이 머리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옮기니 이런것도 귀찮게 다시 받아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지금까지 받은 서울 온누리교회 헌신자학교,사랑의교회 제자훈련,가정사역훈련,선교훈련,아버지학교,QT교육,성경대학2,제자교육1,사역훈련1년 기타 여러 가지 많은 교육을 다시 시작해야 하나

하는 교만함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알파를 시작하고 한주 한주가 지나가면서 하나님과의 처음 만날때의 초라한 나의 모습과 이론이 아닌 마음으로 주님을

알아나가야 한다는 마음이 잔잔하게 지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점점 2년전의 나의 신앙으로 돌아가려는데 인천이라는곳이 나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습니다.광교신도시로 다시 이사를 가야 하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적응하면 돌아가지 못한다는 불안감에 성령 수련회의 기간이 다가올쯤에 아내와

새로 오픈하는 은평성모병원으로 입사하는 문제로 논쟁을 하였습니다. 나의 마음에는 수원아주대학병원 이지만

일단 인천을 떠나야 겠다는 생각에 다른지역 병원으로 입사 원서 접수 마지막날, 아내는 그전까지 병원 불평 불만으로 다른 병원으로 옮기기로 하였던 아내가 원서를 쓰려고 하지 않는 모습에 화가 나서 내 마음에 아내와 의 관계를 닫아 버렸습니다.

하지만 수련회전 아내와 이 마음으로 올라가면 않된다는 압박이 몰려오는중 수련회를 가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뻐 하지 않으실 행동이라는 것을 알기에 아내와 화해가 아닌 내 마음에 양보라는 생각으로

마음 무겁게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이후 아내랑 함께 하는 수련회가 처음이고 아내도 알파를 통해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 지는 모습을 수련회 기간동안에 보니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이 힘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말씀과 기도의 시간이 많아지고 나니

이 또한 나의 결정이 아닌 주님께서 예비하신다는 생각이 나의 머리를 때리며 나의 교만을 내려놓고 주님께서

준비하고 계신 앞날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준비하라는 말씀과 함께 나의 마음이 내려 놓게 되었습니다.

수련회를 내려 와서 아내가 달라진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아내를 통해 변화 시키시고 계시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내와 주일날 교회를 가는데 도로의 가로수의 꽃을 보면서 몇주전에는 인천이 춥고 도로 ,집등이 정리 되지

않아 싫다라고 하던 아내가 도로의 꽃들을 보면서 인천이 너무 좋다라는 말을 듣고 아 하나님이 주변 환경이 아닌

아내를 바꿔주셨구나 하는 생각과 이제 인천을 떠나지 못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날 주일 기도를 하던중에 나만 바뀌면 모든게 해결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2달전 급하게 부산교회에 내려가서

전교인수련회와 체육대회 관련 최종회의를 하고 그동안 준비하고 기획 하였던 선교국 사무실,전도국 사무실의 내 책상에 앉아서 기도 하면서 이제는 하나님께서 해운대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준비하실 계획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따라야지 하는 마음과

저를 믿고 따라왔던 셀식구들,남전도회 명찰을 보고 기도함으로 마음을 정리 하였던게

이 날을 위해 미리 준비 하신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월요일 출근길에 19년도 배정받은 셀 카톡방에 이제 몸닫은 교회가 결정 되었다고 말씀 드리고 나니

더욱 검단중앙교회가 내교회 이며 목사님이 나의 목사님으로 다가 오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인천을 떠나는 것을 말로 마무리 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 이곳이 저의 제2의 고향이며

내교회이며 나의 목사님이라는 말씀이 제 마음 깊은곳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믿음의 굳건한 가장의 모습으로 신앙의 올바른 가정이 유지되며 더욱 신앙으로 성장하는 가정이 되도록

더욱 솔선수범 하며 하나님께 더욱 다가가는 제가 되도록 하겠습니다.